🏛️ 경주 최부잣집, 조선의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보여준 집안
“이번 휴가 중 경주 여행의 한 코스로 교촌한옥마을에 들렀다가 최부잣집댁을 보게 되었는데,
단순히 오래된 집이 아니라 조선에서 진정한 나눔을 실천한 집안이라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어요.
그래서 오늘은 그 특별한 이야기를 블로그에 기록해 두려 합니다.”
1. 경주 최부잣집이란?
경주 교동에 위치한 경주 최부잣집은 한국에서 가장 오랫동안 부를 지켜온 집안으로, 흔히 ‘만석꾼 집안’이라고 불립니다.
무려 12대에 걸쳐 약 400년 동안 재산을 이어왔지만, 단순히 돈이 많았다는 사실만으로 기억되지는 않습니다.
이 집안이 특별한 이유는 바로 노블레스 오블리주(사회 지도층의 도덕적 책임)를 실천하며, 부를 사회와 나눴기 때문입니다.
‘부자(富者)’라는 단어 뒤에 숨어 있는 진짜 의미,
즉 나눔과 책임을 경주 최부잣집은 철저하게 지켜왔습니다.
2. 최부잣집의 여섯 가지 육훈
최부잣집의 부가 수백 년간 이어질 수 있었던 배경에는, 철저히 지켜온 여섯 가지 행동지침 (육훈(六訓))이 있습니다.
- 과거를 보되 진사 이상 벼슬을 하지 마라.
→ 권력과 결탁하지 않겠다는 다짐. - 만석 이상의 재산은 사회에 환원하라.
→ 필요 이상의 축적은 탐욕으로 본다는 철학. - 흉년에는 땅을 늘리지 말라.
→ 남의 고통을 이용해 재산을 늘리지 않겠다는 원칙. - 주변 100리 안에 굶은 사람이 없도록 하여라.
→ 곡식을 풀어 백성을 살리라는 책임. - 과객을 후하게 대접하라.
→ 손님과 나그네에게 베푸는 정신. - 시집온 며느리들은 3년간 무명옷을 입어라.
→ 새 며느리가 최부잣집에 들어오면, 호화로운 혼수나 사치는 기대하지 말로, 소박한 삶을 받아들이라는 의미.
이 여섯 가지 육훈은 단순히 가문을 위한 규율이 아니라, 사회와 함께하는 삶을 위한 선언이었습니다.
3. 육훈 속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실천
최부잣집은 가난한 백성을 돕고, 나그네에게 밥을 베풀며, 흉년이 오면 창고를 열었습니다.
덕분에 “경주 사방 백리 안에는 굶어 죽는 이가 없다”는 말이 생겨날 정도였습니다.
이런 삶은 서양에서 말하는 노블레스 오블리주와 정확히 맞닿아 있습니다.
가진 자의 책임과 희생을 이미 조선시대 한 집안이 앞서 보여주고 있었던 셈입니다.
4. 독립운동으로 이어진 정신
경주 최부잣집의 정신은 일제강점기에도 이어졌습니다.
11대 종손 최준은 가문의 재산을 독립운동과 교육에 아낌없이 내놓았습니다.
- 상해 임시정부와 독립운동가들에게 자금을 지원
- 일제의 압박에도 굴하지 않고 가훈을 실천
- 무엇보다 1922년, 경성법학전문학교(지금의 고려대학교 전신) 설립에 기부하여 민족 교육에 앞장섬
최준의 기부 덕분에 고려대학교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민족 사학으로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5. 영남대학교와의 인연
최부잣집의 교육에 대한 헌신은 고려대에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해방 이후, 최준의 동생 최현일은 대구 지역의 교육 발전을 위해 영남문화대학을 세웠고,
이 학교가 훗날 영남대학교로 성장했습니다.
즉, 최부잣집은 서울에서는 고려대, 영남권에서는 영남대로 이어지며 전국 교육의 두 축을 세우는 데 기여한 셈입니다.
- 고려대 → 민족사학, 독립운동 정신의 상징
- 영남대 → 지역 인재 양성과 학문 발전의 요람
이처럼 최부잣집의 부는 단순히 가문만의 자산이 아니라, 민족과 지역사회의 미래를 위한 씨앗으로 쓰였습니다.
6. 오늘날의 의미
경주 최부잣집을 방문하면, 넓은 마당과 고즈넉한 기와집이 눈에 들어옵니다.
그러나 이 집안의 진짜 가치는 집의 크기가 아니라 그 속에 담긴 철학입니다.
오늘날에도 불평등과 사회적 갈등은 끊이지 않습니다. 그럴 때마다 최부잣집의 육훈은 우리에게 다시 묻습니다.
- 나는 가진 것을 어떻게 쓰고 있는가?
- 나의 삶은 사회와 함께하고 있는가?
최부잣집의 이야기는 ‘부자의 길’을 넘어 ‘올바른 삶의 길’을 보여줍니다.
7. 끝으로..
경주 교동의 오래된 골목을 걷다 보면 마주치는 최부잣집은 단순한 고택이 아닙니다.
그곳은 나눔과 책임, 민족을 위한 헌신이 살아 숨 쉬는 공간입니다.
“사방 백리 안에 굶어 죽는 사람이 없게 하라.”
이 짧은 문장은 조선시대부터 오늘날까지 이어져 내려오는 최부잣집의 정신이자,
현대 사회가 다시 새겨야 할 가치입니다.
경주 최부잣집은 조선의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한 집안,
그리고 고려대학교와 영남대학교의 뿌리를 만든 집안으로서, 한국 사회가 본받아야 할 모범입니다.
그 정신은 지금도 우리 삶을 비추는 거울처럼 빛나고 있습니다.